썰물이 으르렁 거리며 무섭게 들어오고 있었다.
위태롭게 물거품을 맞으며 돌로 된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바람이 휘청 불고, 시야가 탁 트였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멋진 바다를 여기 둔거야." 라고 물었다.
'누가 둔 게 아니라, 늘 여기 있던 거야' 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발 밑에서 새끼 손가락만한 망둥어가
아래로 뛰어 내렸다.
결국. 2년 간의 좌식생활은 실패로 종결됐다.
최소한 작업공간만은 입식으로 회귀하기로 했다.
입식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모니터와 오른쪽 창을 보고 있으니
지난 2년간 내가 왜 고관절통증을 얻으면서까지, 그 고생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나 편한데.
*
어제는 주문한 책상과 의자가 왔고. 하루종일 이사 아닌 이사를 했다.
책상. 의자 하나 더 들어왔을 뿐인데,
기존의 것들의 위치가 바뀌고 구도가 바뀌었으며 결정적으로 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우선 기존의 objects를 방 한가운데 죄다 끌어다 놓았다.
그리곤 그 카오스 속에 가만히 서서 멍을 좀 때렸다.
(그 사이 화장실도 몇 번 갔다오고, 전화도 받고, 마트가서 청소에 필요한 것들을 사오고, 밥도 먹었다)
방은 유기체적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책상의 위치를 잡았다.
그러자 나머지 objects들의 위치는 자연스레 결합되었다.
화룡점정인 청소는 고귀하지만, 매우 고되고 귀찮은 작업이다.
그렇게 하루가 꼴딱 가버렸다.
입식과 좌식의 유기적 공존.
새롭게 변태한 방 한 구석에 앉았다.
활짝 열어 놓은 두개의 커다란 창문으로 밤공기가 들어오자
마침내 모든게 평화로웠다.
나는 아마도 강변으로 내려가는 도로에 서 있었던 것 같아.
아스팔트 가운데 칠이 벗겨진 노란 중앙선이 보였거든.
싱그러운 내음이 나는 물이 무릎까지 찰랑거리고 있었어.
바지를 걷고 있었는데, 사실 큰 도움이 안됐어.
왜냐면 난 물 속으로 수영을 해야한다는 걸 느꼈거든.
무언가 미끄러운 게 발가락을 스치고. 사라졌어.
커다란 고래였는데 어느새 난 물 속에 들어와 있었지.
시원했어 가슴 속까지 짜릿했지.
손을 내미니까 몸이 앞으로 움직였어 마치 우주에서 유영하는 기분이랄까.
하긴 물 속도 공기가 없으니까 같은 걸꺼야.
난 물에 잠긴 다리 아래로 성당 첨탑을 지나.
도로에 줄지어선 자동차를 들여다봤어.
찰랑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울렸어.
물고기들이 나무가지에서 뛰어내리고.
나무들은 물 아래에서 잎을 피웠지.
고래가 다시 나타났어.
꼬리지느러미를 잡자, 엄청나게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어.
마치 나는 것처럼 빠르게 물속을.
숨이 가빠져서 기분이 좋아질 때 쯤 놈은 꼬리를 휙하고 흔들어 나를 물 밖으로 던져버렸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중. 가장 기분 좋은 꿈 이야기야.
모처럼 하늘이 푸르구나.
스님의 열반소식을 들었다.
책장에서 <무소유>를 꺼내 앞장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는다.
'2010. 3. 11. 법정스님 입적.'
그리고 23 쪽부터 시작하는 무소유를 한번 더 읽는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물건 뿐 아니라 마음을 얻는 일도 마찬가지일터.
어제 깨달았던 끊임없는 갈증에 이르는 길이 무소유를 통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오늘 희미하게 느낀다.
미묘하다.
긴 머리를 잘랐다.
머릴 묶던 작은 고무밴드들은 다시 당분간 여기저리로 숨어들 시간이다.
미련 같은 건 없다. 3개월이면 다시 길테니까.
신봉선이 있었다.
실물은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고 보통이었다. 얼굴도 평범한 크기였다. 메이크업의 힘인가.
뒤뚱거리면서 걷는 건 일부러 그런건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연기하는 지인들 덕분에 대학로에 자주 간다. 호강이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살해당했다>를 봤다.
웰 메이드. 근래 봤던 연극 중. 여러모로 인상적이고 만족스러웠다.
이번처럼 주연은 아니지만, 나를 부른 연기자가 단연 빛났던 연극도 드물다.
박신양이 내 앞에 앉아 있었고. 끝나고 보니 나를 부른 연기자의 선배로 왔다.
박신양은 머리가 굉장히 컸고 등치가 있었으며 키는 작았다. 나를 부른 연기자는 키는 작았고 외소했으며 머리는 박신양의 반도 안됐다.
영화 <용서는 없다>를 봤다. 소문대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면 왠만한 배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배우들도 있다.
이번에 설경구와 류승범은 튀지 않음에 만족하는 듯 했다.
보고 나오는 저녁공기가 시원했다.
주말에 트윗을 안했다. 살짝 중독수준이라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
어느새 몸까지 빠졌던 것 같지만.
수영보다는 걸터 앉아서 발만 찰랑거리는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먹었다.
다 마시고 나니.
미숫가루가 우리집에 온지 1년이 넘었음이 떠올랐다.
창문을 열었다. 비냄새가 났다.
미숫가루가 마음에 걸리지만.
더 힘을 내보기로.
난찾아먹는타입은아니다
다만활동범위내에손닿는곳에있는녀석들은정줄놓고초토화시켜버린다
그런데모니터옆에서있으면서도아직살아남은녀석이있다
와사비땅콩한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한다. 언젠가 누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에드워드 호퍼가 생각난다고 했을 때, 내색은 전혀 안했지만. 뛸 듯이 기뻤다. 유치하지만 그렇다.
by 아이퐁
확실히 나는 말로 사람과 소통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느낀다.
내 뇌속에는 언어 보다는 이미지가 늘 범람하고 있는 탓이다.
외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것 뿐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나는 감정과 생각들 모두가
어떤 이미지다.
그렇다보니.
그것들을 말로 설명하는데 있어 곤란함을 느낀다.
특히 나만의 이러한 체계로 삶을 사는데 있어
가장 힘든 건.
음성을 통한 말이라는 소통도구를 사용한 사람과의 대화다.
때때로.
아니 자주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에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물론 그런 말을 듣고 있는 상대 역시.
내가 전하고자 하는 thing을 당연히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걸 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확실히 언어는 완벽한 소통도구가 아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서 종종 그냥 입을 다무는게 편할 때가 많다.
그건 상대를 무시해서라거나, 소통에 대한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완벽한 소통에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나마 음성을 통한 말보다는 낫지만, 글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다.
지금 이 글 조차도.
계속 다른 소통의 도구를 찾으려하는 욕구는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원래 가진게 없는 사람은.
뭐 작은거 하나라도 주머니에 들어 있으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하루종일 불안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건.
주머니에 든 그것이 내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하는 거다.
왜냐하면 태생에 주어진게 없는 우리 같은 족속들은.
한번. 내 것이라 생각하면.
절대.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머리를 흔들며. 아니라고. 털어 내는 버릇이 있다.
기대하지 않는다.
차갑고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겠지만.
그런 감정 소모. 지쳐버려 싫어.
어떤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차갑고 매끄러운 인간이 될지라도.
어쩔 수 없다.
프랭클린다이어리를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정도로
무질서한 인생을 사는 나로서도
그저 흘러버린 시간이 아까워 불편함을 느끼는 곳이 있다.
관공서. 은행.
그 곳들은 아무리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가도
가깟으로 일이 처리되는 신기한 곳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멍하니 앉아 모니터를 보거나,
앞에 앉은 대머리 할아버지의 벗겨진 부분의 면적을 계산하는데 소모한다.
오늘도 난. 영업 종료가 다 되어가는 4시가 되어서야 데스크앞에 앉았다.
하지만 인상 좋은 직원 아저씨는 내 카드의 오류를 처리해주지 못했다.
다만 자신은 카드업무를 할 줄 모르며,
카드담당이 몸살감기에 걸려 월차를 냈고,
게다가 오늘따라 사람이 몰려 다른 직원도 바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 다시 오시면 번호표 없이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인상좋은 아저씨는 송구스러운 얼굴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뒤에서는 한 40대 남자손님이 곧 영업마감인데 일을 빨리 처리하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죠. 뭐. 그러죠. 그러죠. 하면서 은행을 나오는데.
이런 생각에 화가 슬그머니 났다.
'이래저래 1시간을... 난 그곳에서 뭐한거지..?'
내일은 얼마나 여유롭게 가야할까. 몸살걸린 직원은 내일 출근할까.
아 정말 가기 싫다. 은행.
차라리 치과 원츄.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는게 싫다.
나의 선택. 결단.
나의 실수. 오해.
나의 무지. 부족.
나의 오만. 자만.
때문이 아닐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부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랑만 아니라 숨 쉬는게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좌절하지 않겠다.
상처를 주며 태어났고 살아가지만
더 큰 희망을 이야기 할테다.
오늘도 한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나만 생각했다.
내 결정이 더 큰 희망을 피워낼 수 있기를.
잊지 않겠다. 오늘 내가 준 상처.
나의 영화.
유리로 된 고래 같았다. 모래 색 평원을 해안 삼아 잠시 쉬러 나온.
빛에 반짝이는 몸통은 금방이라도 다시 끝없는 바다로 뛰어들 것만 같았다.
고래의 옆구리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곧게 뻗어 있었고,
미지의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이 서둘러 옆구리 구멍으로 들어갔다.
고래는 얌전히 그들이 다 올라타기를 기다렸다. 대학교 3학년,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그 후 몇 차례 이런저런 일(주로 마중이나, 배웅 같은)로 공항을 가게 됐다.
그러면서 공항에 대한 내 첫인상은 약간의 환상까지 버무려져 더욱 깊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공항이라는 장소에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일 없이도 공항에 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음에 구름 끼고 뇌가 푸석한 날에는 어김없이 공항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곤 한다.
나는 거대한 고래의 뱃속에 앉아,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 막 돌아온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그러고 있으면 마치 갓 만들어진 피가 심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분이 들고, 머리도 상쾌해진다.
그곳은 자유가 넘친다. 심지어 화장실세면대 수도꼭지에도, 엘리베이터 안 2층 버튼에도,
속이 다 보이는 쓰리기통에도 자유가 묻어 있다. 모두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자유로워, 너무나 자유로워!’
비행기는 자유 그 자체다. 알록달록 고유의 색을 뽐내는, 쇠로 만들어진 이 커다란 잠자리 떼들은
평소에는 줄지어 나란히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다가도
한번 비행하기로 마음먹으면 수백 톤의 몸에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쇠뭉치 잠자리의 이륙은 요란하지만 소란스러운 대신 경쾌하고,
아슬아슬하지만 위험한 대신 신난다.
나보다 몇 천배는 무거운 쇳덩어리가 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나도 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힘을 얻는다.
자유, 꿈, 희망. 관념적이기만 했던 세상의 단어들이 살아나 말을 거는 그 곳.
공항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습관적인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집으로 올라가는 길목 떡볶이노점에 들렀다.
불쌍한 백수의 마음을 아셨던 것일까. 평소처럼 떡볶이 국물 묻히지 말고 튀김 1인분을 싸달라고 하자 6개를 고르란다.
'이게 왠일? 5개였는데'
게다가 서비스라며 아주머니는 오징어 튀김 1개를 더 퐁당 던져 넣는다.
아주머니가 다 데워진 튀김을 봉지에 담는 동안 주머니에서 2천원을 꺼내 내밀었다.
잠시 겸연쩍어하시던 아주머니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기,, 오늘부터 2500원이야. 떡볶이랑 순대 다 1인분에 500원씩 올랐어."
"아,, 그래요?"
나는 얼른 주머니를 뒤져 500원을 더 내밀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다더니 그래서 그런가봐요?"
"어, 그게 좀 그러네... 미안해 학생."
"아유 아니에요. 아주머니 잘못도 아닌데.. 500원 올랐어도 튀김도 1개 더 주고 서비스도 늘 주시잖아요. 고맙습니다."
"그래. 고마워요. 미안해-"
노점의 포장에서 나올 때까지 아주머니는 계속 미안해하셨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라며 조금 과장해서 1인분은 족히 될 떡볶이까지 든
묵직한 검은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느낀 아주머니의 미안한 마음은 오른 튀김값 500원을 훨씬 넘기고도 남았다.
참... 어떤 작자들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수당을 7.5%나 올리면서도
오히려 더 허세에 느는 서비스 하나 없는데,
몇년만에 500원 오른 떡볶이는 그래도 양심적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세상에 저이들 보다 바보천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얼굴만 바라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생글에 연이어 함박 웃음을 짓습니다.
이런 사람 들을 가만히 따라가 보면 이들은 서로 떨어져서도 웃음이 마음에서 끊이질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마치 달빛거리를 날아갈 듯 가볍고,
작은 콧노래가 담장 위에 도둑 고양이를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에 겨워 잠 속으로 빠져 들지요.
이들은 아마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가는 직행열차 표를 공짜로 쥐어 준다고 해도 마다할 바보들입니다.
사랑에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참 세상에 저런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리의 지나가는 낯선 사람의 뒷 모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지 주저 앉아 버립니다.
뭐가 그리 슬픈지 매 호흡 마다 세상이 꺼질 듯 한숨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조용히 뒤에서 지켜 보자면, 이들은 눈물이 마음에서 멈추질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톡톡 떨어지는 창밖의 비만 봐도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자주 멍하니 앉아 있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리고 밤에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합니다. 참 바보입니다.
초여름 눈부신 사랑에서도 우린 바보고,
날씨가 너무 좋아 사랑의 빈자리가 허전할 때도 우린 바보였습니다.
그런들 어떤가요. 우리가 바보인 들.
2007.5.3.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