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12/13 4차원의 숲 : 나이스의 숲 - 퍼스트 컨택트
  2. 2008/04/12 버켓 리스트 :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않게 하는 단어 "친구"
  3. 2008/03/16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 마지막 한 걸음까지
  4. 2008/03/02 잊고 있던 현실 : 4개월 3주 그리고 2일
  5. 2008/02/28 치명적 갈증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6. 2008/01/23 나 쿠엔틴이야. 이거 왜이래? - 슬래셔의 추억 <데쓰 프루프>
  7. 2007/12/16 차의 맛? 인생의 맛? : 녹차의 맛. 이시이 카츠히토
  8. 2007/12/15 하비에르 카마라 슬픈 사랑에게 말을 걸다 : talk to her. 페트로 알모도바르
  9. 2007/12/01 첫인상의 유통기한? : Doris Doerrie. 내 남자의 유통기한 그리고 파니핑크
  10. 2007/11/26 천재적 미친 상상력 : 수면의 과학. 공그리 대마왕 미셀 공드리
  11. 2007/11/24 유령이 나타나면 대박? :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과 앤드류의 판타지.
  12. 2007/11/15 낯설음을 찾아서 : 천국보다 낯선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이스의 숲은 종합선물세트다.
아사노 타다노부, 이케와키 치즈루, 카세료. 여기까지만 들어도 닥치고 영화 시청이다.

거기에 개성있는 테라지마 스스무, 굵직한 조연의 안노 히데야키의 이름까지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침을 질질 흘리게 되리라.

그러나 나이스의 숲 (Naissu no mori)은 이시이 카츠히토의 영화다.
위에서 언급한 배우를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감독인 이시이를 모른다면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넘기지 못하고
중간에 꺼버릴 것이 분명하다.

이시이를 모른다면,
누군가는 지루함에 주먹으로 벽을 쾅쾅 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어색한 장면들의 부조리한 붙임에 멀리를 하다 토를 할지도 모른다. 먹던 콜라가 체할 수도 있다.

이시이 카츠히토와 이시미네 하지메, 미키 슌이치로 2명의 감독이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지만
아직은 덜 알려진 나머지 두 명도 이시이와 같은 부류?의 감독이다.

논리적이고 자유민주주의적이며 궤도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에게 이 영화는




같은 영화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이전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5차원 세계를 구축했던 이시이 감독을 알고 있다면 
대폭소는 아닐지라도 몇 번은 낄낄대고 몇 번은 "오~~" 감탄도 하며 즐길 수 있다.

옴니버스지만 차레차레가 아니라 뒤죽박죽으로 나오는 영상 속에
그리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캐릭터들과 괴상한 소품 생경한 음악이 콜라쥬 되어
신나는 이시이 월드를 이뤄낸다.

이시이 초보에게는 가장 최근 영화이자 가장 대중 친화적이었던 영화 <녹차의 맛>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앞에서 언급한 스타급 연기자 외에 이시이사단의 맛깔나는 조연들이 눈에 속속 들어오는 재미를 더 누릴 수 있다.

세상에 훌륭한 타고난 영화감독은 정말 많다. 
하지만 데뷔부터 가장 최신까지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드물다.
그가 만든 영화라면 어떤 영화라도 감독을 모른 상태에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진한 색을 가진 감독들.

언뜻 생각나는 이름은 우리나라 김기덕, 홍상수, 허진호..
또 미셀 공드리, 이시이 카치히토, 미키사토시, 이와이 슌지, 구스 반 산트 등등.. 등등..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건 색을 가졌다는 게 "훌륭하다" 거나 "천재적이다" 거나 또는 "위대하다" 와 통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말들과 같은 줄에 서 있는 하나의 수식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볼 때면 어떤 감독은 정말 천재인 인것만 같은 적도 있고, 어떤 감독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런 영화를 좋아하고 즐겨보고 추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냥 개인적 취향의 감독을 꼽아보면 언제나 어김없이 내 손에는 색이 진한 감독들이 꼽혀있다.
김기덕과 홍상수 색은 싫지만,, 프하하하하하하;;;;;;;;;;;;;;;;


기타브라더스-ㅋㅋㅋ



나이들수록 어려지는 카세료



와우 배우의 발견! 니시카도 에리카


좋아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를 제치고 영화내내 눈을 사로잡았던 니시카도 에리카. 혼혈인 듯 한데,.

일본인 혼혈은 지상최고의 미인이라는 속설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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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의 숲>감상 후기 속편 - 일기장 편

냉장고에 있는 유통기한 10일 지난 아직 뜯지도 않은 팽팽히 독이 오른 1리터 우유팩을 생각하고 있었다. 현금지급기에 돈이 부풀어 있다고 착각했지만 나는 홍대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니 목적이 있었던 배회였다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감지 않은 머리에 둘러진 헤드폰에서 잠에서 막 깬 금발의 깡마른 불량기 있는 눈빛의 백인 청년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런거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에서 한 고등학생이 하늘로 붕 날았다. 몇 미터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차들이 서고 사람들이 소릴 질렀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런거야. 바닥에 엎드려 있던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몇 걸음 걸었다. 그리고 픽 쓰러졌다. 나는 주머니에 만원짜리를 꽉 쥐었다. 냉장고에 우유보다 더 오래된 8개월된 날달걀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동그란 홈에 일렬로 늘어선 달걀은 8개월 동안 그곳에 있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하루씩 유통기한은 지나갔다. 빵을 사러 나왔었다. 남자가 학생을 태우고 황급히 떠났다. 사람들은 스르륵 사라졌고 차들은 다시 달렸다. 꿈에서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빵을 사야겠다고 나선건 꿈 속에서 였나. 현금지급기가 말했나. 깡마른 금발의 백인청년이 먹고 싶다고 했나. 차에 치인 학생이 먹고 있었나. 냉장고 속에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이 있었나.


S e n s e s/saw l 2008/12/1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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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판 포스터. 제목은 "가장 좋은 것은 마지막에 온다"?


연기파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출연만으로 영화 <버켓 리스트>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연기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다가온다.

깊어지는 주름만큼 더욱 푸근함과 인자함의 향기가 짙어지는 모건 프리먼.
익살과 아이같은 심술으로 폭탄웃음을 자아내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 잭 니콜슨.

두 사람의 버디 무비인 <버켓 리스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들이 죽음을 앞두고도 버켓 리스트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사실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6개월 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이건희'와 같은 재벌과 같은 병실에서 그것도 바로 옆 침대에서 듣는 건 불가능하다. 혹 그런 일이 일어난 다고 해서 '이건희'가 콜이 카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같은 배를 탔다는 순진한 이유로 돈을 펑펑 써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과 같지 않다는 것 쯤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그 속에 담겨진 의미다.

기존의 다른 영화들이 죽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면,

<버켓 리스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고 그 것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죽음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

고작 6개월 동안 어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냐고 반문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 속 카터와 콜의 경우에 6개월은 그들 전체 인생을 마무리 짓는데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발짝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나의 버켓 리스트는 무엇인가?" 스스로 묻게 만든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잘 가고는 있는 건지,

혹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진짜 '버켓 리스트'를 쓰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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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제시하는 또 하나는 의미는 "친구"다.

개인적으로는 "버켓 리스트"와 삶의 의미를 돌아보자는 교훈적인? 암시보다는

전혀 다른 배경과 삶을 살아온 카터와 콜이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비록 영화라는 환상의 공간에서지만ㅡ_ㅡ;; -

생각해 보면 수십년을 함께 한 오래된 친구보다 잠깐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더 깊은 신뢰와 친근감이 느껴지는 친구를 만난 경험이 나 역시 있다.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하지만 설레이는 기쁨의 어떤 것이었다.

인간에게 친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친구는 피로 맺어진 가족과 사랑으로 관계되는 연인 혹은 배우자와는 다른 독톡한 관계다.
때로는 피도 못 채워주는 부분을 채우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 숭배되기도 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탈리아 남자들은 인생에서 사랑보다 우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그리고 많은 경우 '진실된' 사랑이 '일시적'인 반면에 '진실된' 우정은 '영원'하다.

어.. 나의 경우에는....이라고 해두는 게 낫겠다. ㅎ

어쨌든 이 삭막한 세상에 "친구"라는 단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렇지 아니 한가...요? ^^




<버켓 리스트>
친구만의 '느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강추
친구만의 '느낌'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강추
머스탱 마니아에게도 강추
(나는 미국사람도 아닌데 왜 머스탱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까 ㅡ_ㅡㅋ)

S e n s e s/saw l 2008/04/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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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개봉한 독일영화 <마지막 한 걸음까지: 독일원제-'걸어서 갈 수 있는 한 멀리'정도 돼겠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논란이 됐었던 소련에 포로로 끌려간 독일군에 대한 영화다.

주인공 클레멘스 포렐은 전쟁 막바지에 소련으로 투입됐지만 곧 전쟁이 끝나고 소련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강제징역 25년형을 선고받는다.

춥고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기차를 타고 포렐을 포함한 독일포로들이 도착한 곳은 시베리아 대륙의 가장 끝에 위치한 한 탄광의 수용소다.(지도상으로 보면 경도상으로 대한민국보다 더 동쪽)

독일까지는 적어도 만 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포로들은 좌절한다.
하지만 포렐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탈출의 기회을 노린다.
그리고 약 3년여간 수용소장과 포렐의 쫓고 쫓기는 여정이 시작된다.

몇 몇 평론가들은 시베리아 끝에서 이란까지 만 여킬로가 넘는 거리를 도망치는 포렐을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강한 의지를 영화가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자유에 대한 의지보다는 그의 귀소본능에 영화가 더 초첨을 맞추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포렐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위기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원하는 것 없는 착한? 사람들. 심지어는 에스키모족?의 주술사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살아나는 등등)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까지도 소련의 국경을 넘고자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한 회귀본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롭고 싶어서였다면 포렐은 굳이 국경을 넘어 독일까지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귀소본능이란 것이 있다.
특히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수천년동안 집단생활을 하고 가족공동체를 유지해왔던 인간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현실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동안 늘 나를 반겨주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은 큰 힘이 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대장정의 길을 걸어온 포렐을 통해 집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 오기까지 약10년,
도주기간만 3년의 극적인 서사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다루려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여정을 다루려다보니 포렐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등장과 그 과정 등이 어색할 수 밖에 없었고 전체적으로 영화의 흐름 또한 불규칙해 관객들이 감동할 타이밍을 놓치게 한다.
또한 몇 장면들은 작위적으로 보이기까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장면만으로는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장면들이 있다.
그 유명한!! 장엄한? 강 위로 위태롭게 놓여진 소련과 이란의 국경의 다리에서
마침내 수용소장과 포렐이 운명적인 대면을 하는 장면과,

마지막에 드디어 집에 도착한 포렐이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의 창문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S e n s e s/saw l 2008/03/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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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판 포스터


2007년 회갑을 맞은 칸의 선택. 황금종려상 수상작.

개인적으로 롱테이크 기법의 영화를 좋아한다.
첫째 생동감 때문에 둘째 흔들리는 화면으로 인해 더 집중해서 보게 되므로
롱테이크라고 해서 모두 흔들흔들 거리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롱테는 인물들을 쫓아다닌다.

영화가 주려는 메세지가 불안, 긴장, 두려움, 초조함을 바탕으로 할 경우 감독들은 롱테이크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롱테이크 기법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하다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멀미를 하게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멀미에 질려버린 관객들에게 영화의 메세지 자체를 전할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는 귀미테를 붙여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예전에 영화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가 보여준 "노골적인 롱테이크" 영화를 볼 때는 정말 토하는 줄 알았으니까.

1987년 루마니아의 독재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불법낙태를 시도하는 두 여학생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불법낙태시술을 받기 위해 준비하기에서부터 "그것"이 밖으로 나오고 "처리"하고
그제서야 레스토랑에서 한숨 돌리기 까지 오직 한가지 이야기를 감독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롱테이크는 두 여자의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함과 무언가에 대한 억눌린 분노를 마치 실제상황을 보듯 느끼게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동안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낙태, 이거 우리나라도 불법 아닌가? 혹 내가 모르는 사이 낙태가 허용됐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직 우리나라도 "모자보건법"에 의해 허용되는 예외만을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외는 강간에 의한 임신, 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등)

그렇다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7년 루마니아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 똑같이 낙태를 불법으로 하고 있는데 왜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됐을까?
마치 우리나라는 안그러는데..하는 마음과 함께.

이것이 나의 두번째 의문이었다.

그건 아마도 1987년 루마니아는 낙태는 불법이라는 사실 말고도 다른 사회적인 억업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낙태금지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법낙태시술을 둘러싸고 등장인물이 느끼는 심리를 통해 당시의 루마니아의 사회적인 불안감과 억업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낙태를 불법으로 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마치 이 영화를 전혀 상관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테고..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쓰잘데기 없는 말만 해댄다고 면박주고 탄핵까지 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 국가가 됐으니까.

바로 이 점이 칸의 회갑연에서 최고 상을 받게된 이유라고.
나만 생각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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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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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포스터


개인적으로 한국어판 포스터가
가장 아주 최고로 허접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S e n s e s/saw l 2008/03/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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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한번 더 봐야겠다.."

느닷없는 엔딩 크레딧을 망연히 바라보며 입에서 흘러 나온 말.

난 영화를 한번 더 보던지 아님 코맥 맥카시의 동명 원작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찾아 읽으려는 참이다. 혹시나 내가 놓친 실체에 대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그런데 제목은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이 물음은 벌써 미국에서 코엔 형제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그들의 대답은 "그건 원작을 쓴 작가에게 물어보라"

아마도 작가는 그건 독자에게 물어보라고 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다.


코엔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매력은 바로 이런 "궁금증"이 아닐까.

뚜렷한 실체 없이 2시간 동안 사람을 홀려 놓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
묘한 끌림.


제목에서 풍기는 의아함에서 시작한 물음표는
사막과 국경이라는 서사의 배경과 세명의 무뚝뚝한 남자를 통해 계속 증폭되어간다.

길지 않은 대사와는 대조적인 적지 않은 죽음.
많지 않은 표정과는 대비되는 얕지 않은 내면.

그리고 영화는 궁금증이 극에 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엔딩 크레딧을 올려 버린다.

동시에 우린 느끼게 된다. 마치 목에서 먼지가 날 것 같은 심한 갈증을.

영화 초반에 "물.."을 애걸하던 멕시코인처럼..


혹시 나처럼 시커먼 엔딩 크레딧 뒤에서
안톤 쉬거의 야릇한 표정을 본 것 같은 착시현상을 겪은 사람? ㅋ

고 착시현상이 영화의 대사를 빌려 한 말은,

"쉬거처럼 영화도 나름대로의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어떤 규칙인지는 모르겠지만."

S e n s e s/saw l 2008/02/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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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포스터


"이런 영화일 줄 몰랐는데 속았다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지루해서 혼났어요. 같이 간 사람한테 미안해서..."

한국에서 영화 홍보를 잘 못한 탓에 죄없는 쿠엔틴만 비난 바가지.

포스터에서 쿠엔틴의 잘  팔렸던 전작들을 언급하며 뭔가 컬트적이면서도 새로운 스피드~ 액션을 기대하게끔 했으니.. 보급사 잘못 아닌가? ㅋ

마치 영화 <택시>나 <스피드 레이서> ? 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쿠엔틴의 명성을 이용한 상술이 훤히 보이잖아.

그러니 쿠엔틴을 좋아하지 않았던 또는 몰랐던 관객들은 배신감에 배신감을 느꼈을 밖에.

"이런 쓰레기 B급 슬래셔 무비 같으니!" 하면서 말야. 사실 요런 반응! 제대로 본 건데 말야.

차라리 미국처럼 홍보를 했더라면 괜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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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이 미쿡에서 2007년에 이 영화 개봉시 포스터.

이것이 한국에 붙었다면? 나만의 예상반응: 이거 요새 포스터 맞아? 촌스러운 거시... 옛날 영화 다시 틀어주는 건가..

이러지 않았을까? 혹 미국에선 이런 반응이 없었을까? 아닌가..

미리 이런 영화야- 라며 예능 프로그램 돌아 다녔을테니 포스터 나올쯤엔 사람들 다 알고 있었을까?

"이게 말이지 칠팔십년대 극장가를 연상시키는 거시기머시기한 기획의 영화야.."라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영화는 처음 기획할 때부터 영화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베르토 로드리게스가 70년대 B급 영화를 염두해 제작했다네.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미쿡에서는 '그 시절을' 떠올리기 위해 Grind house(7,80년대 두 편의 B급 영화를 동시 상영하던 극장을 일컬음)라는 타이틀 아래 두 감독의 영화 두편을 동시 상영했다는 군. 한편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을 둔 후. 나가서 투명한 병 환타라도 한 모금.ㅋ

그런데 조선에서는 긴 상영시간을 감안하여 나눠서 개봉했다고 하고.

덕분에 다른 종류의 불량과자가 되버렸으....

미쿡에서는 평론가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는데 로드리게스의 작품이 더 낫다고 하여 쿠엔틴 자존심을 자극하려고 했더랜다.(내 생각에;) 소심한 쿠엔틴은 겉으로 절대 표를 내지 않았겠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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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 프루프 단독 샷


이제 그만, 데쓰 프루스에 대해 지껄여 보면..

치이일..파알-씨-이입! 년!..............대를 풍미했던 슬래셔 호러물에 도전한 쿠엔틴.

영화 곳곳에서 그의 장난끼와 완소 싸구려끼가 팍팍 풍기는 것을 느껴진다.

특히 노오란 색에 검은 줄만 그었을 뿐인데 츄리닝을 연상 시키는 차. 에서 드러나는 색깔집착.
이쁜 금발미녀만 출연시켜 죽였을 뿐인데 이자식..하며 드러나는 그의 성변태성.
싸구려 팍팍나는 화장실 유머에 드러나는 그의 천진난만함.
역시나 얼굴 잊지 않게 출연해 주시는 요구한 적 없는 자상함까지. ㅎ

주연 스턴트맨 마이크는 미키루크의 돌연 출연 취소로 왕년의 액션배우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커트러셀 형님.

그런데 최선을 다해 연기한 보람도 없이 왜 내 머리 속에는 계속 러셀의 두상에 쿠엔틴 얼굴이 콜라쥬되어 보이던지..

특히... 마지막에 손 다쳐서 엄살 떨 때.. 죽이려고 달려드는 차를 향해 장난이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던 비굴한 모습에서 말이지..

그래도 영화 본 어떤 양반가의 자손은 "이거 언제 만든 영화야?"라고 물을 만큼 억지로 필름에 스크래치하시고 툭툭 장면 엇끊기느라 고생하였을 타란티노양의 노고를 치하. 영화 재밌었어요.^^

아하! 그리고 80여분 간의 개 지루함의 대장정을 날려주는 마지막 10여분은

한산도 대첩 버금가는 통쾌함을 가져다 주었으니,

B급 슬래셔 호러물의 신분으로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논한 영화 아닐까 싶은데. ^^

그리고 영화 한편으로 "쿠엔틴 변했어 나쁜 놈!" "내리막길 시속 200킬로 달리는 쿠엔틴" 등과 같은 찬사는 너무 한거라고 생각해. 영화 한 두편 찍을 것도 아니고 계속 찍어 댈텐데 말야.

데쓰 프루스!

평소 변비로 고생하시던 분, 누군가를 죽도록 패고 싶으신 분, 하루 세끼 날마다 스트레스로 밥 비벼 드시는 분, 버스기사 아저씨의 포악운전에 조만간 운전사 폭행하실 분, 주위에 마초하드웨어 장착된 남성들이 많으신 여자분들에게 강추. 초강추.

역시 화풀이 전문 액션은 쿠엔틴이 최고에요! (구라버전)

S e n s e s/saw l 2008/01/2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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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마음 속으로 되물었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노의 가족들처럼 단조로와 보이지만 행복했던 시간이 내게는 없었던 걸까.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자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엄마 아빠와 떨어져 2년여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영화 속 사치코보다 조금은 더 어렸던 나이였다.

매일같이 일어나면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고

한 낮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마루에 몇 시간이고 그냥 걸터 앉아 있기도 했다.

겨울에는 꽁꽁언 냇가에서 삼촌이 만들어 준 썰매를 타고

할아버지가 팽팽한 대나무로 멋들어지게 만들어준 방패연을 뒷산에서 날렸다.

문방구에서 산 힘없는 가오리 연을 가진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들.



<녹차의 맛>

일본 원제는 <차의 맛> 2004년 개봉. 상영시간이 143분.

도쿄 외곽의 그림같이 한가한 산간 마을에 조금 엉뚱하지만 평범한 하루노 가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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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만화가이자 괴짜 할아버지.
최면술사 아빠.
전직 에니메이터 엄마.
기분 좋으면 티나는 아들 하지메.
커다란 자신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꼬마 사치코.
싱겁지만 재미있는 외삼촌 아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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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따스함. 초 여름의 설레임. 석양 무렵의 애잔함.

평범하지만? 잊고 있었던 혹은 경험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맛볼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지 못해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소박하고. 담백하고. 한가로운. 차의 맛과 같은 영화.

"왜 당신은 삼각자인가요"


S e n s e s/saw l 2007/12/16 11:43
Hable con Ella (2002. Talk to her. 한국 개봉제목 - 그녀에게)

이야기 하는 남자. 베니그노와
우는 남자. 마르코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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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체 식물인간이 된 알리샤를 돌보는 간병인 베니그노와
자신을 떠난다는 말을 하지 못한 체 식물인간이 된 리디아를 돌보는 작가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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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의 눈물을 이해하는 베니그노와
베니그노의 사랑을 이해하는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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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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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스페인을 찾은 적이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 때 스페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야릇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났다.

태양의 나라 정열의 나라 스페인은 해가 서쪽 땅 아래로 사라질 때 쯤,

붉은 비단이 하늘을 가르고 푸른 기운이 땅에서 피어 오를 때 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마르코의 눈물 같기도 했고, 베니그노의 탄성력을 잃은 체 날아가는 희망없는 사랑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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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e n s e s/saw l 2007/12/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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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유통기한


독일에서 온 도리스 되리의 2005년 영화 <Der Fischer und seine Frau>
그대로 번역을 하자면 어부 그리고 그의 아내다. 영어제목도 같다.

그런데 국내 개봉 제목은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이 제목 덕 좀 봤다.

작년 한국 여성 영화제에 상영작이었고 그래서 도리스 되리도 직접 방한했었다.

영화제 행사와는 별도로 독일문화원에서 마련한 영화와 동명인 원작소설 Vorlesung(낭독회- 우리나라에선 좀 낯설긴 한데 작가가 청중 앞에서 책을 읽어주고 또 간단하게 토론 또는 질문을 하는..)에서 그녀를 봤다.

네이버 지식검색하면 나오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그녀는 호탕한 성격에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쨌든 책은 아직도 안 읽었지만 이제서야 영화를 보게 됐다. 기대를 잔뜩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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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유통기한


이영화는 원 제목대로 물고기 전문가(혹은 물고기에 미쳐사는?)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되고 현실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되는 그런 내용. 도리스 되리가 약간의 판타지를 가미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평범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그런 결혼생활을 원하는 아내와 그렇지 않은 물고기쟁이 남편을 통해 결혼과 여성의 자기실현과 사랑을 한꺼번에 비벼서 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

구성이 엉성하다는 느낌. 전체적으로 흐름이 일정하지 않다는 느낌.

게다가 많은 좋은 음악들을 사용했음에도 음악이 화면에서 튄다는 느낌. 마치 턴테이블이 튀듯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내 머리 속에 남은 건 온통 알록달록한 원색의 아기자기함만 뿐이었다.

그래... 도리스 되리 답다. 하지만 '확실히 뭔가 아쉽다'가. 이 영화에 대한 내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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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유통기한


원작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날(낭독회 때) 도리스 되리가 읽어 내려갈 때 그녀 자신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낄낄대며 웃어댔던 걸로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실 내가 도리스 되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0년 영화 <Keiner liebt mich :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1994>를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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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주인공 이름인 <파니핑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파니핑크>를 처음 봤을 때 감동은 신선함과 뭉클함 그리고 충만한 행복감이었다.
'와우 진짜 제대로된 영화다'

주인공들과의 관계와 이야기 그리고 음악이 절묘한 선율을 만들어 내는 영화였다.

거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수 많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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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핑크.오르페오


영화를 본 후 다시 비디오테잎(2000년 당시만 해도 dvd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ㅋ)을 어렵게 구해내 기분이 멜랑꼴리할 때마다 틀어 놓았던 기억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파니와 오르페오의 영화 곳곳에 촘촘히 박힌 주옥같은 대사들을 중얼거리며.

무엇보다 하늘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어느 날 밤 사라졌던 오르페오는 잊지못할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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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핑크中 오르페오


그 후 도리스 되리가 소설작가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많지는 않지만 종종 한국에도 번역된 그녀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작년엔 낭독회에서 직접 보기도 했고.

책과 영화를 비교해보자면 <파니핑크>를 제외하고

감독으로서 그녀와 작가로서 그녀는  아직까지 49 : 51

그래도 다음에 그녀의 새 영화가 다시 개봉한다면 당연히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것이다.

언젠가는 오르페오를 나의 뇌리에서 밀어낼 그녀의 새로운 캐릭터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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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핑크中 오르페오

S e n s e s/saw l 2007/12/0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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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난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의 영화를 좋아하나 보다.

지금까지 뭐 '딱히 그렇지도 않아'라고 생각해왔는데 조금만 집중해서 내가 맘에 들어하는 영화나 감독들을 하나 하나 찍어보니 분명. 그렇다. 젠장. 정신 병자 같은 ㅡ,.ㅡ

미셀 공구리. 시멘트 공구리의 달인- 이. 아니라 미셀 공드리.;;;;;
프랑스의 유명한 CF 감독으로 기발한 상상력으로 나이키,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의 광고를 찍었다.

2001년에는 첫 영화 <휴먼 네이쳐>에서 털복숭이 미모의 여자와 소심한 완벽주의자 남자, 학대받는? 정신병자 같은 야성인간이 등장하는 미친 코미디? 영화로 세계를 놀라켰다.;;

그러나 기대하시라. 그건 기성영화판의 개성없는 감독들에게 개미 코딱지 만한 서막의 장송곡에 불과하노니.

2004년.(한국에는 2005년)

기억의 삭제라는 놀라운 상상력으로(빌어먹을!! 내가 군대 있을 때 써둔 시나리오랑 비슷하다고!! 제대하고 나중에 영화보면서 아쉬움의 눈물로 밥을 말아 먹었다는..;;)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통해 짧고도 유효한 사랑의 유통기한도 계속 사먹으면 된다는 '사랑무기한 반복재생'설을 주창하며 영화를 만들어 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영화. <이.터.널.선.샤.인.>

공구리는 그의 겨우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무려 15개의 가장 알만한 사람은 다안다는 상을 휩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여우주연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각본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2005) - 각본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2005) - 작품상(뮤지컬,코미디)
골든 글로브 시상식(2005) - 남우주연상(뮤지컬 코미디)
골든 글로브 시상식(2005) - 여우주연상(뮤지컬 코미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작품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여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각본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감독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2005) - 편집상
미국 배우 조합상(2005) - 여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2004) - 각본상
시애틀 국제 영화제(2004) - 각본상

지지부진 했던 짐 캐리와 오동통통 너구리 광고 지명 1순위 케이트 윈슬렛에게는 이게 왠 횡재?
연기력 급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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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5년에 개봉한 영화가 바로 <수면의 과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2006) 크리스마스 시즌 몇 명의 한적한? 극장들에서 게릴라 작전을 연상 시키듯 개봉했다.

<수면의 과학>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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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본 듯한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기억이 날랑 말랑 할게다.

가엘 가르시아 베느날. 우리나라에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젊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역으로 알려졌다. 한 때 주위 몇 아낙들은 그 때문에 잠 못 이뤘다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럴 일은 없을 듯..ㅋ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공드리의 막돼먹은 상상력은 기대해도 좋다. 기대해야만 한다. 중간에 끄지 않으려면;;

재미 포인트는 스테판(가엘 가르시아)의 판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짝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와의 그들만의 연애방식과 또 한명의 판타지 동지 기(앨랭 샤바)의 괴상한 행동들.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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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돌아이 같은 상상력에 아이와 같은 순진함과 꿈의 달콤함을 넣고 현실의 냉정함 약간 술을 첨가해 미셀로 공구리를 쳐보자.

현재 미셀은 우리 봉감독, 또 한명의 다른 감독과 함께 2008년 <도쿄>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앞두고 있다.
S e n s e s/saw l 2007/11/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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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프랑스.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원작 추리 소설.

1986. 10. 런던.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루이스 웨버에 의해 뮤지컬로 재 탄생.
 
2004. 미국. 조엘 슈마허 감독. 앤드류 루이스 웨버 제작. 영화화.


원작이 있는 뮤지컬이나 영화의 경우 순수하게 평가를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원작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 들은 도도한 표정으로 "잘 만들었지만 원작 보다는 못하군요.."라며 조소하고,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난 작품을 옹호하는 팬들은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며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재현했다"던지, "원작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라며 맞선다.
-이들은 보란 듯이 비싼 공연료를 지불하며 몇 번씩 재관람을 감행하기도 한다. 허나 책이 낡아 너덜 너덜 해질 때까지 읽어대는 소설 독자들에게는 무의미한 결투 신청 일 뿐..;;;-


<오페라의 유령> 뿐만 아니라 많은 소설 들이 연극, 영화, 뮤지컬 또는 TV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만들어 지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 지겠지..

때로는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둔 원작 소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때로는 알려지지 않은 원작 소설을 발굴해 성공을 거둬 원작자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아니면 이래 저래 다~ 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난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그것도 이미 뮤지컬과 영화까지 나온 상태에서..그것도 2007년에;;;
-그래 나 아직 괴물도 안 봤고 왕의 남자도 안 봤다. 그래도 공공연하게 문화적인 인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간만에 읽었던 추리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잡자 마자 끝까지 읽어 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가 가스통 르루의 상상력에 천번의 키스를 날렸던 기억도..

이미 뮤지컬과 영화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읽어서였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동안

인상적인 장면이 나올 때면 뮤지컬이나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 됐을까 궁금했다.

며칠 후에 바로 2004년 앤드류 루이스 웨버가 제작한 영화 DVD를 구해 앉았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전에도 몇 번 영화로 제작 됐었다. 주로 스릴러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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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훌륭했다.

영화의 이점을 이용한 화려하게 제작된 세트와 조명. 그리고 다양한 공간적 시각적 재미들까지.

특히 OST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 만큼 음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제작과 함께 이 영화의 음악 역시 앤드류 루이스 웨버가 담당했다는 걸 아시는지.-

비록 불멸의 세계 3대 뮤지컬 중 하나라는 찬사에는 못 미칠지는 몰라도,

영화는 웨버에게 골든 글로브(골든 글러브로 착각 마시라. 그건 야구다.;;) 3개부문에 이어 아카데미 3개부문을 쥐어 줬으니 더이상 뭘 더 바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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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나에게 이런 생각이 다가왔다.

왜 이 영화를 굳이 원작 소설과 비교해 그 감동에 찬물을 끼얹어야 할까.

당연히 원작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기에 나몰라라 '쌩'까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나는 확실히 소설 <오페라의 유령>과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다르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다름' 이 왜 원작을 그렇게 축소하고 바꿔놨냐 라는 힐책이나 영화의 스케일과 재현의 놀라움에서 온 느낌이 아니라

'영화로의 <오페라의 유령>은 이런 기막힌 맛이 있구나'하는 '다름' 이었다.

그러고 나니 세계인이 인정한 뮤지컬도 보고 싶은 욕구가 마치 한강에서 솟아 오르는 물기둥(월드컵 기념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미국 갈뻔 했다.;;)

다행이 지금은 이성을 되찾고 다음에 기회가 오면 2001년에 왔다던 오리지널 공연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논 상태다.

설레인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과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어떨까.

S e n s e s/saw l 2007/11/24 00:04

짐 자무쉬(Jim Jarmusch).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소유자일 것만 같은.

사람들이 물어보면 아마도 알다고 말하는게 체면 구기지 않은 것만 같은 이름.

여기에 '저기 그 영화 있잖아 <천국보다 낯선> 봤지?'라고 물으면

'아~ 당연히 봤지'라고 대답해 버리고야 마는 이름.

하지만 정작 머리속으로 정말 봤는지 안 봤는지 되묻게 되는 이름.


2005년 에 자무쉬는 <브로큰 플라워>라는 영화로 다시 한번 그는 칸 영화제 시상식에 섰다.
심사위원 대상. - 이자리는 꼭 1년 전인 2004년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섰던 자리이기도 하다. 박감독 꽤 큰 상 받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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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그를 세상에 알린 영화 <Stranger than paradise:천국보다 낯선>로 칸 영화제 국제 비평가협회를 수상한지 21년 만이다. - 이 영화로 다음 해(1985)에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도 받았다.-

이 세월동안 그는 <데드 맨> <커피와 담배> 등 많은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 내면서 독립영화의 한 축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그는 50줄을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영화인들의 우상으로 여겨진다.

상업화의 가치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곳에서 궤도를 그리는 그의 행적을 마치 영화인들은 성지순례하듯 그리곤 한다. 설사 스스로는 돈이 넘쳐나는 가방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왜냐하면 자무쉬는 성인과 같은 존재로 그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계속 그곳에 계소서. 비천한 저는 이렇게 이 곳에서 번뇌하고 방황하고 있사오니,,"

**여기서 자무쉬 성인 계보를 잠시 살펴보자면 그의 성인의 상위 계보에 바로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독일 영화계의 거장 '빔 벤더스'가 있다. 자무쉬는 바로 빔 벤더스의 후원을 받아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국보다 낯선>의 제작국이 독일이라고 나온 것으로만 봐도 얼추 추측이 가능한 대목. -빔 벤더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그의 영화를 가지고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패스..-

자무쉬는 185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 문화학부를 졸업하고 파리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유럽의 영화 거장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 후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뉴욕대학교 영화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첫 장편영화 <영원한 휴가>를 만들어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그의 영화 인생의 시작한다.

영화의 형식적 실험을 많이 시도하고 장편과 단편, 흑백과 칼라 등 다양한 영화의 구성요소들을
여러 각도에서 끼워 맞추고 조립한다. 한마디로 잘 가지고 논다.

또한 유럽영화에서 받은 영향과 그가 태어난 미국의 대중문화의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영화세상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와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새를 영화적 요소들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Stranger than paradise>는 그의 개성을 잘 표현한 영화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매번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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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카메라의 고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씬이 고정된 카메라에 의해 촬영됐다.

이미 공간을 잡아 놓고 등장인물이 그 구도 안으로 들어오는 식이다.

요즘처럼 카메라와 인물이 혼연일체되어 전혀 그 둘이 따로 라는 것을 알아 차리기 힘든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보면 이 영화는 처음에 뭔가 불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구도에서 펼쳐지는 미리 정해진 공간은 또한 그 장면에 대한 의미를 함양하고 있다.

왠지 어색하고 낯선 영화 속의 인물, 시간, 공간을 바로 카메라의 구도가 낯설음으로 완성 시킨다.

이것은 미장센의 초울트라 대부 빔 벤더스의 영향을 받은 '자무쉬 판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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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통해 윌리와 에디와 에바의 세상을 향한 미장센적인 유머를 즐겨 보시길 바란다.

ps: 영화에서 에디가 '새로운 곳에 왔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다'라는 말의 의미도 되새기며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S e n s e s/saw l 2007/11/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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